제 3회 항암치료의 날 수기공모전 수상작
아름다운희망상 (최우수상)
이미령님
소세포 폐암입니다.
2017년 9월 12일 갑작스럽게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날입니다.
친구들과 늦은 점심과 담소를 나누고 주차된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오려던 순간
동생에게 받은 메시지 한통..
소세포폐암.. 처음 듣는 질환명..
폐암이면 폐암이지 소세포 폐암은 뭘까?
다소 생소한 암종이 궁금해서 일단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치료를 해도 치료를 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걸리셨다는 소세포 폐암은 검색 첫페이지부터 무시무시한 암이였습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머리를 무언가로 한대 맞은 기분
이번 여름 휴가에 가족여행을 가지고 했었는데 나만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했던 것도 생각나고
아버지가 살이 많이 빠지시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깐깐한 성격과 노령으로 그러려니 했던 내가 너무나 한심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도착을 했는지 모르게 집으로 왔지만 차마 아버지께 전화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누워서 마음을 진정 시켜 보기도 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고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싶은 마음,
평온했던 우리집에 날벼락 같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였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앞으로 고아가 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감히 입밖에도 내고 싶지 않은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였습니다.
그렇게 진단을 받고 몇날 며칠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근근히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면 몸서리 쳐지는 두려움에 온몸이 벌벌 떨려서 소름이 끼쳐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태반이였습니다.
그럴때마다 당장 아버지가 어떻게 되 버리실까봐 두려워서 쌕쌕 숨소리를 내면서 자는 아이옆에서
아이의 숨쉬는 숨결을 느껴야 비로소 울면서 잠들기가 일쑤였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일이 일어났으며, 제발 꿈이기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빌고 또 빌었지만
눈을 떠보면 냉정하게 하루가 시작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은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이였습니다.
당장 어떻게 되 버리실까봐
내 곁에서 떠나가 버리실까봐 두려운 마음과 그래도 꼭 살려 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형제들과 상의도 했습니다.
그렇게 폐암 환우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카페도 알게되어서 정보를 얻고자 가입을 했고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또 더 큰 두려움을 안게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소세포폐암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무서운 암이였습니다.
더 알아보고 시간을 끌 여유가 없이 속도전이라고 하는 소세포폐암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수많은 검색을 통해서 치료를 해도 가망이 없지 않나, 괜히 고통만 안겨드리는 것은 아닌가 그냥 남은 생애를 편안하게 보내게 해드리는 것이 맞나 하는 고민도 했었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사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냥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1차 항암치료부터 표준치료로 시작
약발은 잘 듣는다고 하지만 전이와 재발이 너무 흔해서 사실상 치료가 힘든 암이라고
지금 투병하시는 분들도 1년을 넘기기가 힘들고 혹여 넘기시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아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계셨기에 과연 이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되었고
괜히 무서운 치료를 해서 마지막을 고통과 함께 보내드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엄청난 두려움이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지방에서 서울로 첫 진료를 보러 오신 아버지는 농담도 하시면서 소세포 폐암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겨낼수 있다고 하시면 어떤 치료든 열심히 받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셔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고 이런 아버지의 의지가 나쁜 결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실망하실까 싶어서 지레 또 걱정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2017년 9월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는 그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표준 항암치료를
1주일에 3번 총 6차까지 무사히 마치셨습니다.
너무나 신기했던 것은 흔한 부작용으로 오심과 구토가 거의 없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고속버스로 이동하셔서 도보로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평균적인 통계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구나.
어쩌면 우리 아버지가 그 1%의 가능성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이때부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2월 처음 발견 되었던 림프절, 폐, 골반뼈에 전이되었던 암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안고 퇴원을 하셨고 고생끝에 귀한 휴지기를 받으셨어요.
휴지기 동안에는 방사선 휴우증 때문에 거의 집에서 요양을 하셨지만 그래도 살아계심에 감사드리고
잘 이겨내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귀하고 귀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요.
그리고 다시 2018년 8월 휴지기 이후 두번째 정기검진에서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뇌전이와 간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이와 재발이 흔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힘든 치료를 마치고 휴지기라고 하지만
6개월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었더니 다시 전이라니..
진료실에서 나오는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버지 보실까봐 화장실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고생을 했는데 불쌍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해드릴수가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이 현실이 너무 야속해서 무능한 자식인 것이 한스러워서..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매번 이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랬던 날이 매일이였습니다.
하지만 눈을 떠보면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닥친 현실이며 변하지 않는 고통이였습니다.
하지만 전이가 된 순간에도 가장 의지를 불태우셨던 분은 바로 아버지 당신
다소 실망을 했지만 우리는 이렇게 힘든 항암을 또 다시 해야 하나의 기로에 서서 고민했지만
아버지는 두번 고민하지 않으시고 당연히 치료를 들어가셧습니다.
우리는 항암이라는 힘든 치료를 듣기만 했지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통의 크기를 사실 가늠할 수 없었지만
오롯이 혼자 이겨내신 아버지가 두번째 항암 이리노테칸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리노테칸의 부작용을 찾아보고 고생하신 다른 환우의 사례를 보면서 또 한번 절망을 했지만
매일 운동을 하시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아버지에게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였으며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이리노테칸을 4차까지 잘 이겨내셨는데 부작용은 한방에 찾아왔습니다.
어느날 찾아온 극심한 두통,
그리고 피부에 올라온 발진을 시작으로 갑작스레 수두 의심환자가 되셨습니다.
전신에 수포가 올라오고 극심한 통증과 고통이 지속되는 가운데 음압 병실로 격리 입원을 하시게되면서 또 다시 저는 아버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나 싶어서 하루 하루 고통속에서 제발 이 고난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TV에서만 보던 음압 병실로 이동하시고 그다음에는 얼굴도 볼수 없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이렇게 마지막도 보지 못하고 보내드리는 건가 싶어서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감염 환자라고 면회도 불가해서 발만 동동 구르면서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맞이했습니다.
한달이 다되가도록 격리된 채로 병마와 싸우시는 아버지.
자식인 우리는 생각합니다.
힘든 항암을 하면서 괜히 고통스레 삶을 연장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편안하게 계시면서 마지막을 정리하셔야 하는것인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혹여 다음 항암을 하게 된다면 해야 할지의 여부를 두고 또 상의를 합니다.
그렇게 격리실에서 병마를 이기고 퇴원하셨지만 다 재검사에서 치료 실패라는 아픈 결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고통을 다 이겨낸 아버지에게 단 몇 달만이라도 휴지기를 허락할 순없는지
원망스러워서 또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 다시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시고 소세포폐암의 마지막 항암제
독하디 독한 탁솔을 선택하십니다.
나이 73세의 고령으로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들다는 세번째 항암까지 오기까지
수없이 많이 겪었던 응급 상황 그리고 입원과 퇴원..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신것일까 수없이 되뇌어보지만 답은 없습니다.
우리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아버지는 포기 하지 않고 지금도 항암을 이어가시길 원하셨으니까요.
그렇게 지금 이순간에도 아버지는 암과 싸우고 있지만 제곁에 계십니다.
처음에 진단 받고 제가 찾아보았던 소세포 폐암의 평균 여명은 치료하지 않으면 3개월,
치료해도 1년을 넘기기 어려운 질환으로 알고 정말 많이 울고 고통스러웠었는데 아버지는 거의 2년이 다되어 가십니다.
물론 2년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삶의 의지가 있으셨기에 그 힘든 항암을 오롯이 견뎌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저에게도 소중한 2년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고 소중한 가족을 하루 아침에 보내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비록 고통스런 소세포폐암을 얻어 갖은 고생을 하셨고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 또한 너무 고통스러웠고 매번 희망고문 속에서 아파하고 아파했지만, 그런 과정속에서 더욱 돈독해진 가족이되었으며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더 많이 보낼수 있었습니다.
사실 건강하셨다면 1년에 몇번 뵙지도 않았었는데 지난 2년동안 병원 오시는 날에는 거의 찾아뵙고 함께 밥먹고 커피마시고 담소를 나누면서 이전에 없던 가족애를 더욱 깊이 느낄수 있었으니까요.
전에 제가 알았던 암은 그냥 만성질환처럼 살살 달래서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이제는 일반적인 질환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암에 걸리고 항암치료를 힘들게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암환자 가족도 마음의 치유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고문과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같이 병들어 가니까요.
신은 왜 우리에게 이런 힘든 질환을 만들어주셔서 가슴아프게 하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삶의 의지가 있고 꾸준히 치료를 한다면 완치는 못하지만 평균 여명과는 다른 결과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저희 아버지처럼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고 두려움에 떠는 가족과 환우님들이 많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균은 그저 통계치일 뿐입니다.
모두에게 오는 부작용이 나에게는 안올수도 있고 나에게 있는 증상이 남에게는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그저 두려워하다가 지금을 허비하지말고 지금 이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지금 이순간이 환우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건강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처음 진단 받고 의지를 불태우면서 치료를 시작하던 그순간이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체력이 좋고 건강한 순간이였는데 뒤로 갈수록 면연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바닥이 나니 지금은 함께 먹고 싶은 음식도 먹을 수 없고 함께 가고 싶은 곳도 갈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내가 할수 있는 순간에 그 순간 가장 아름답게 내가 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인생을 즐기는 것 , 지금 이순간이 나에게 당신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지금 2년 동안 갖은 고생으로 폭삭 늙어버리신 아버지
하지만 그런 아버지라도 제곁에 살아계셔 주심을 감사하는 이순간
아버지의 고통이 크고 그 고생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버텨주고 계심이 이겨내 주고 계심이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두려운 마음도 큰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굳은 의지로 또 다시 이겨내실 거란 믿음도 확실합니다.
소세포폐암 그까짓거 내가 이겨낼수 있다던 아버지
이미 당신은 소세포폐암의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어요.
진단 당시 4기였고 워낙 속도가 빠르며 전이와 재발이 흔한 암종이라서
매번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던 아버지와 우리 가족 모두..
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이 어렸을 때 하면 된다고 했던 우리집 가훈처럼
몸소 실천을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과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직 암은 자라고 있고, 얼마전에도 전이된 곳의 암 사이즈가 커졌지만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아버지는 또 다시 희망을 품은 항암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번 항암이 실패하면 또 어떤 치료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흐르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서
나홀로 싸움을 이겨내시는 아버지의 강인함으로 분명히 또 기적을 보여주실거라고 생각해요.
2년간 암환자 가족으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지만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더라구요.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며 함께 할 시간이 허락되어 더욱 돈독해진 가정이 되어 감사드립니다.
만약 더 늦게 발견했다면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아버지를 놓쳐버렸을 테지요.
좀더 일찍 발견했다면 어쩌면 완치를 해서 지금 건강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실테지요.
후회도 많이 했었고 가슴도 많이 뜯어내봤지만, 그냥 이 순간 그래도 우리 곁에서 삶의 의지를 가지고 버텨주시는 아버지
그 모습 그대로 감사드리며 사랑합니다.
지금 이순간이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눈물나게 그리울 날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와 우리가족 그리고 아버지는 또 힘을 내봅니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은 크지만,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을 향해 갈 것입니다.
소세포폐암입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2년간 우리 가족의 시간은 멈춰버렸지만 그럼에도 멋지게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고통 이겨주셔서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조금 더 저희 곁에 있어주세요~! 사랑합니다.